유민펠로우 이야기

2024 헤이그아카데미 결과보고서 (성균관대학교 이시원)
관리자
2024-09-11

유민펠로우 결과 보고서

2024 The Hague Academy of International Law : Private Courses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전문석사) 

이 시 원

 

 

Ⅰ. 들어가며

 

  

▲ 2024년 여름 헤이그 국제사법 아카데미 그룹 사진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24년 헤이그에서 여름을 보내고, 저는 저를 둘러싼 작은 세계를 깨고 더 멀리 나아가려는 확신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전 세계에서 온 변호사, 박사, 국제법 전문가들을 만나 학문적 탐구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2019년 홍진기법률연구재단 유민펠로우에 선정되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듬해 헤이그 아카데미에 참석이 불발되었고, 이후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변호사 실무를 하면서 아카데미에 대해 생각할 충분한 여유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올해 3년 차 변호사가 되면서 학문적 탐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서울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재단 이사님, 간사님들의 따뜻한 배려로 마침내 2024년 여름 헤이그 국제사법 아카데미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헤이그에 도착한 때의 설렘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덴하그와 평화궁,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숙소 근처 해변과 낭만적인 일몰,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홍진기법률연구재단에 깊이 감사드리며, 헤이그 아카데미에서의 소회를 글로 남기고자 합니다.

 

 

Ⅱ. 헤이그 아카데미의 프로그램


가. General Lecture와 Seminar, Extra Class

  

 (좌) 평화궁 전경      (우) Zanobetti 교수님의 규제 관련 수업

 

 

  2024년 헤이그 국제사법 아카데미는 7월 29일부터 8월 16일까지 3주간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국제사법 일반론과 함께 경제규제, 국제중재, 투자분쟁과 관련된 주제들이 주로 논의되었습니다. 규제와 관련된 강의는 공법적 측면 또한 다루었기 때문에 공법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제가 특히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특히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제규제나 국제중재 이슈를 다룰 기회가 있었지만, 이론적 지식은 부족했기 때문에 해당 수업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전에는 각 주제마다 약 1시간 정도의 수업이 진행되었고, 사례 스터디와 토론은 오후에 별도의 세미나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질문과 토론 시간이 주어지므로, 다른 참석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기에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EU Law와 Comparative Law에 관한 Extra course가 있었습니다. 저는 따로 수강하지 않았지만 General Lecture 만큼, 또는 그 이상의 퀄리티였다는 수강생들의 후기를 들어서 다음 기회에 Extra Course에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Private Course 강의 일정표

 

 

  한편,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3주 전체 강의를 오프라인으로 수강하지 못하고 일부는 귀국 후 온라인 강의로 수강을 하였습니다. 사전에 아카데미 측에 참석 불가 사유를 소명하고, 별도 온라인 강의 계정(Zoom link)을 받아 나머지 강의들도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체 일정 참석이 불가하다면, 아카데미 측에 문의하여 저처럼 하이브리드 강의를 진행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 Social Visit: HCCH, Israel 대사관, Peace Place Library

 

  헤이그 아카데미에서는 수업 외에도 헤이그에 소재하는 국제기구와 각국 대사관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견학 프로그램은 사전에 메일 등을 통해 공지하고,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습니다. 아카데미 기간 중 일부 기관에 여석이 있을 경우 이를 별도로 공지하기도 합니다. 다만 국제형사재판소 등 일부 인기 있는 기관은 선착순 등록이 금방 마감될 뿐만 아니라 여석이 생기는 경우도 낮아서 아카데미에서 오는 메일은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HCCH(헤이그 국제사법회의), Israel 대사관, 평화궁 도서관을 방문하였습니다. HCCH에서는 3시간 가량의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HCCH에서 채택된 협약, 주요 내용, 체결 절차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아동의 약취·유인 방지, 보호에 관한 협약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강의 중간에 참석자들과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참가자들의 질문 속에 각국의 현안과 사법체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좌) HCCH에서 이루어진 강의       (우) 평화궁 도서관 지하 서고에 보관된 고서

 

 

  평화궁 도서관 투어에서는, 평화궁의 역사와 지하에 보관 중인 고서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국제법의 아버지 휴고 그로티우스가 쓴 책도 잘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투어 외에도 평화궁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는 별도의 가이드 강의가 있었습니다. 아카데미 기간 중 프로그램 간 여유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단기간의 홈페이지 계정을 마련해 주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정 기간동안 국제법 또는 법학 자료가 필요한 경우 도서관의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고, 아카데미에 참석한 학생의 경우 할인된 가격에 연간 이용권을 구매하여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 다양한 Social Events

 

  견학 프로그램 외에도, 웰컴 파티, 헤이그 시청사에서의 리셉션, 덴하그 스헤브닝겐 해변에서 열린 파티 등 다양한 소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에서 각국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금요일 밤 시청사에서 진행된 리셉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법의 도시답게, 헤이그 시에서 아카데미의 참석자들을 반겨주었습니다. 헤이그 시장님께서 친히 방문하여, ‘여러분들이 헤이그에 와서 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할 수 있습니다’, 와 같은 멋진 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좌) 헤이그 시청사 리셉션       (우) 평화궁 앞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아카데미 기간 중 많은 모임이 열립니다. 참가자들끼리는 ‘Whats app’ 그룹챗을 통해 소통하였는데, 소셜 이벤트를 위한 별도 채팅방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적극적으로 네트워킹하는 것이 좋습니다. 강의를 통한 학문적 토론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여러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들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합니다.

 

 

Ⅲ. 헤이그에서의 생활


가. Skotel에서의 생활

 

  아카데미 기간 중에는 스헤브닝겐 해변 근처에 위치한 Skotel에서 지냈습니다. 호텔경영대학의 기숙사로 쓰이는 건물이어서, 우리나라 일반 기숙사와 구조나 생활 등이 유사합니다. 기본적인 생필품(세면도구, 드라이기, 의약품 등)은 한국에서 미리 구비하거나, 근처 알버트하인 등 상점에서 구매하여야 합니다. 

 

  Skotel에서 1번 트램을 타고 15분 정도 가면 평화궁이 나옵니다. 매일 아침 1번 트램을 타고 보는 야외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 시간대 트램을 타는 사람들은 거의 아카데미 참가자들이어서,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Skotel에서 커피와 와플 등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주었습니다. 점심 식사는 아카데미 내 카페테리아(야외 테이블이 있어서 꽤나 낭만적이었습니다)에서 해결하거나, 평화궁 근처 브런치 카페에서 오픈 샌드위치, 아사이볼 등을 먹었습니다. 소셜 이벤트가 없는 저녁에는 Skotel 내 키친에서 간단한 음식을 해먹었습니다. 키친은 4개의 유닛이 공유하는 공간이며, 1개의 유닛에는 2~4명 정도가 거주하였으므로, 약 10~16명 정도 키친을 공유하였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삼삼오오 모이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이 시작되는데, 로스쿨 생활, 변호사 시험, 박사 논문 주제, 그 외 법학도로서의 생활과 앞으로의 목표 등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각국의 음식을 해와서 포틀럭 파티를 한 적도 있었는데, 한국의 매운 라면 위에 네덜란드 특산물인 치즈를 올리니 고급 요리 못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좌) Skotel 키친에서 저녁 식사     (우) 평화궁 근처 동네 풍경


 

나. 소도시 관광: 암스테르담, 델프트, 이준열사 기념관

 

  수업이 없던 오후와 주말에는 근교 여행을 다녔습니다. 저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특히 좋아해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덴하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평화궁 근처에 ‘Museum Panorama Mesdag’ 미술관도 있었는데 사정상 방문은 못하였습니다. 스헤브닝겐 해변 파노라마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방문한 참가자들이 추천한 곳이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본래 귀족 장교의 저택을 개조한 것으로 건물 자체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미술관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비넨호프와 호수가 참 평화로웠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는 베르메르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그의 고향을 담은 <델프트의 풍경>이 있습니다. 
 

 

 (좌) 비넨호프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우) 델프트와 휴고 그로티우스 동상

 

 

  덴하그 근교의 델프트는 휴고 그로티우스 동상을 중심으로 하여 아기자기한 상점과 운하가 아름다웠던 도시입니다. 특히 파란색 도자기가 유명하여, 구경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베르메르의 고향인 만큼 그 기념관도 있었습니다.

 

  덴하그 차이나타운 근처에는 이준열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관장님께서 기념관의 자료와 역사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주십니다. 만국평화회의 당시의 상황과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께서 직접 남긴 글과 인터뷰 자료 등 방대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준열사께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발표한 호소문에는 국제법학도이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었고, 정의와 평화의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이준열사 기념관 내 유훈

 

 

다. 2024 파리 올림픽

 

  이번 헤이그 국제사법 아카데미 기간에는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주말에 파리에 방문하여 대한민국 여자 양궁 경기를 관람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금,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앵발리드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둘도 없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프랑스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는데, 옆에 앉은 프랑스 할머님과 서로를 축하하며 올림픽 정신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올림픽 기간에 도시 전체가 경기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일부 대중교통 사용에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고 안전했습니다. 올림픽 선수들, 기자들, 관광객들이 모두 파리에 모여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Ⅳ. 나가며

 

  한창 업무 중인 와중에 3주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운하를 본 순간 왜 이제야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이그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참 찬란했던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 참가자들, Skotel의 직원들, 헤이그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고 따뜻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보통은 여행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여행지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헤이그에서 보낸 이 시간과 그 속에서 얻은 여유와 행복, 영감은 법학도로 살아가면서 결코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아카데미를 통해 제가 몸담아 온 작은 세상을 나와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유민펠로우 분들께서도, 헤이그에서 소중한 경험과 추억, 세상을 살아갈 영감을 얻으시기를 응원합니다.